왜 코딩을 하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묻다가,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최초에 인간은 왜 공부하게 되었을까?
두가지 이유를 추정해봤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호기심
직면한 현실의 문제로 인한 절망감.
이런 감정들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고통이 클수록 그것이 해소 되었을 때의 기쁨도 크다. 이러한 감수성이 인간을 공부로 이끈 것은 아니었을까?
이 감수성이 사회화되고, 체계화되면서 호기심은 과학이 되었고, 절망감은 기술이 되었다.
거대화된 과학과 기술은 좋은 일이었지만, 인간에게는 큰 숙제가 생겼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후대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 고민이 고도화된 것이 교육의 출발이 아니었을까? 교육을 통해서 사회는 더욱 빨리 성장하고, 부강해졌다. 교육은 승승장구 했지만 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누락시킨 것 같다.
나
이제 교육은
'나'의 호기심이 아니고, '그들'의 호기심을
'나'의 절망감이 아니고, '그들'의 절망감을
가르친다.
그 결과,
공부의 중요한 동력이었던
호기심과 절망감이 사라졌다.
당황한 인류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성적이라는 것을 고안하고,
성적이 낮은 자에겐 불행을,
성적이 높은 자에겐 불안을 갖게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체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절망감을 해결하는
쓸모 있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높여서
입학과 취업을 위한 일종의 화폐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봤다.
‘나’를 누락시킨 교육을 경멸해야 할까?
그럴수도 있지만,
경멸 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고충을 이해해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
문제를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경멸이 아닌 경의를 표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고충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고
고충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천천히 따져봐야겠다.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경멸이 아니라 경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