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시를 썼다. 그런데 내가 시를 좋아하는지는 잘 몰랐다. 남의 시는 난해했기 때문에 나의 시도 난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난해한 글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시를 쓴게 아니라 시라는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하지 못했다.
국문과에 진학해서 학과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차게 재미 있었다. 나이가 차서 군대에 갔다. 3년동안 생각했다. 나는 시를 좋아하는가? 컴퓨터를 좋아하는가? 컴퓨터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대 후 학교를 그만 두었다. 컴퓨터를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생활코딩을 시작했다. 어느날 HTML의 태그를 설명하면서 문득 '태그'라는 말이 옷에 붙어있는 '태그'와 같은 의미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약속이란 뜻의)언어, (음악회에서 순서라는 의미로 쓰이던)프로그램, (계산하는 직업인이란 뜻인)컴퓨터, (점원과 고객이란 뜻의)서버와 클라이언트와 같은 기술적인 관념들이 사실은 모두 비유와 은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는 거대한 시였다.
오늘 문득 나는 결국 시를 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원점에 있었다.